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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2026-06-14

한글 타자기의 역사: 안과의사 공병우는 왜 타자기를 만들었나

세벌식 타자기를 만든 공병우 박사부터 1982년 두벌식 표준화, 컴퓨터 시대의 타자 프로그램까지. 우리가 매일 쓰는 한글 자판에 담긴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한글 타자기의 역사: 안과의사 공병우는 왜 타자기를 만들었나

우리는 매일 아무 생각 없이 한글을 타이핑하지만, '기계로 한글을 찍는다'는 것은 한때 국가적 난제였습니다. 알파벳 26자를 일렬로 찍으면 되는 영문과 달리,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네모 칸 안에서 조합되는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풀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글 입력의 결정적 장면들 1949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1982 두벌식 표준 자판 확정 1990년대 PC 보급과 타자 프로그램 전성기 현재 웹에서 바로 타자 연습 타자기 → 표준 자판 → 타자 게임 → 웹 브라우저

네모 글자를 기계에 넣는다는 것

영문 타자기는 글쇠 하나가 글자 하나입니다. 하지만 한글 '값'을 찍으려면 ㄱ, ㅏ, ㅂ, ㅅ 네 요소를 같은 자리에 겹쳐 찍어야 합니다. 게다가 '가'의 ㄱ과 '고'의 ㄱ은 모양과 위치가 다르죠. 이 조합 문제 때문에 한글 기계화는 오랫동안 "불가능하다", "차라리 한글을 풀어쓰자"는 말까지 나왔던 난제였습니다.

안과의사, 타자기에 인생을 걸다

이 문제에 뛰어든 대표적인 인물이 안과의사 공병우입니다. 병원을 운영하던 그는 한글학자 이극로를 만나 한글 기계화의 필요성에 눈을 뜬 뒤, 진료실 한켠에서 타자기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1949년, 초성·중성·종성을 세 벌로 나눈 세벌식 속도 타자기를 내놓습니다.

공병우 타자기는 빨랐습니다. 글자 모양은 다소 삐뚤빼뚤했지만(이른바 '빨랫줄 글꼴') 실용적인 속도를 냈고, 한국전쟁기와 그 이후 군과 관공서의 문서 행정에서 실제로 활약했습니다. "기계에 한글을 맞추지 말고, 한글의 구조대로 기계를 만든다"는 그의 철학은 지금의 세벌식 자판으로 이어져 여전히 마니아들이 쓰고 있습니다.

1982년, 두벌식이 표준이 되다

타자기 시대에는 회사마다 다른 자판을 썼습니다. 네벌식, 다섯벌식까지 난립하던 자판은 컴퓨터 시대가 열리며 정리가 불가피해졌고, 1982년 정부는 자음 한 벌 + 모음 한 벌의 두벌식을 표준으로 확정합니다.

두벌식이 채택된 논리는 명확했습니다. 배울 게 적다는 것. 자판 배열이 단순해 교육 비용이 낮고, 기계식 타자기와 달리 컴퓨터는 초성·종성 구분을 소프트웨어가 대신 처리해줄 수 있었습니다. 세벌식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표준의 힘은 컸고, 이후 모든 학교와 관공서, PC가 두벌식으로 통일됩니다.

1990년대: 타자 연습이 국민 오락이 되다

PC가 가정과 학교에 보급되면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타자 연습이 '교육'을 넘어 '오락'이 된 겁니다. 컴퓨터 학원과 학교 컴퓨터실에서는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 필수 코스였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산성비 게임은 수업 시간에 몰래 하는 국민 게임이 됐습니다. 지금 30~40대의 상당수는 이 시절 게임으로 타자를 뗐습니다.

그리고 현재: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이제 타자 연습은 설치형 프로그램에서 웹으로 넘어왔습니다. 한글타자왕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70여 년 전 진료실에서 타자기를 두드리던 안과의사의 문제의식 — '한글을 얼마나 빠르고 편하게 입력할 것인가' — 은 여전히 유효하고, 우리는 그 역사의 수혜자로서 매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었다면, 당신의 타자 속도로 그 역사에 답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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