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태풍이 오던 해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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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태풍이 오던 해 전문
셋째 권은 딸이 태어난 해였다.
그해의 가계부는 필체부터 달랐다. 글씨가 흐트러진 페이지가 많았다. 분유값, 기저귀값, 예방접종비. 새로 등장한 지출 항목들 사이에서 아내의 한 줄들은 짧아져 있었다.
"10월 4일. 분유 큰 통. 밤에 세 번 깼다. 이 사람이 두 번은 자기가 일어났다. 내일 출근인데."
"11월 19일. 내 미역국거리. 이 사람이 끓였다. 맛은 없는데 세 그릇 먹었다."
맛은 없는데 세 그릇 먹었다. 나는 소리 내어 웃었고, 웃다가 콧등이 시큰해져서 당황했다. 그해 겨울의 나는 기억한다. 잠이 늘 모자랐고, 회사에서는 신입 티를 겨우 벗은 처지였고, 아이는 울고, 통장은 얇았다. 힘들었다는 기억으로 뭉뚱그려 저장된 시절이다. 그런데 아내의 가계부 속에서 그 시절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역국 세 그릇, 두 번의 새벽, 서로를 재우려던 두 사람.
같은 시간을 살고도 한 사람은 힘듦을 기억하고 한 사람은 애씀을 기록했다.
넷째 권, 다섯째 권. 딸의 첫 신발값 옆에는 "한 달 신고 작아짐. 아까운데 안 아깝다"라고 적혀 있었고, 어느 어버이날 카네이션값 옆에는 "양가 3만 원씩. 이 사람이 우리 엄마 것까지 사 왔다. 시댁 것만 사 올 줄 알았는데.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고두고 기억할 것.
그 다짐대로 아내는 기억했을 것이다. 나만 모르는 나의 좋은 순간들을, 아내는 이십이 년째 장부에 쌓아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