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기록되지 않은 쪽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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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기록되지 않은 쪽 전문
목요일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 먹었어?"
"먹었지. 장모님은 좀 어떠셔."
"재활 시작했어. 생각보다 정정하셔. 토요일에 갈게."
끊으려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저기, 여보."
"왜."
"...콩나물국 끓이는 거, 멸치를 먼저 우리는 거야, 콩나물을 먼저 넣는 거야."
전화기 너머에서 아내가 잠깐 조용했다. 그러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당신이 웬일로 국을 다 끓이냐고, 멸치 먼저라고, 콩나물 넣고는 뚜껑을 열지 말라고. 비린내 난다고. 나는 네, 네, 하고 받아 적었다. 정말로 적었다. 메모지에.
사실 하고 싶은 말은 국 끓이는 법이 아니었다. 가계부를 봤다고, 다 읽었다고,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그런데 그 말들은 전화로 하기에는 너무 컸고, 나는 원래 그런 말을 입으로 못 하는 사람이었다. 삼십 년째. 다음 생에도 못 고칠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했다. 입으로 못 하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사실 사흘 내내 눈앞에 있었다. 아내도 입으로 하지 않았다. 아내는 적었다. 콩나물값 옆에, 김밥값 옆에, 증명사진값 옆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안 쓰고 이십이 년 치 사랑을 다 적어 놓은 사람이 우리 집에 살고 있었다.
금요일 퇴근길에 나는 문방구에 들렀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계부를 한 권 샀다. 표지가 제일 튼튼한 것으로. 오래 갈 것 같은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