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일곱 번째 공책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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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일곱 번째 공책 전문
할머니의 첫 기일이 오기 전에, 나는 여섯 권의 필사를 모두 마쳤다.
옮긴 글을 정리해 얇은 책으로 만들었다. 인쇄소에 맡겨 스무 부를 제본했다. 표지는 그 꽃무늬 보자기를 사진으로 찍어 썼고, 제목은 할머니의 첫 문장에서 가져왔다. 『꽃이 지는 것을 서러워 말 것』. 지은이 자리에는 할머니의 이름 석 자를 넣었다. 일흔두 살에 처음 자기 이름을 쓴 사람이, 아흔을 앞두고 책 표지에 이름이 박힌 저자가 되었다.
기일에 모인 식구들에게 한 권씩 돌렸다. 아버지는 책을 받아 들고 아무 말 없이 표지만 오래 쓸었다. 고모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나오지 않았다. 조카들은 제 증조할머니의 문장을 더듬더듬 소리 내어 읽었다. 무릎이 일기예보다, 라는 문장에서 다들 웃었다. 웃는 소리가 나는 집을 보며 나는 그 문장을 생각했다. 집이 하루 종일 환했다.
원본 공책 여섯 권은 다시 꽃무늬 보자기에 쌌다. 매듭을 묶으며, 이 매듭을 다음에 푸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온 밤, 나는 책상에 앉아 새 문서를 하나 만들었다.
파일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일곱 번째 공책. 커서가 빈 화면 위에서 깜박였다. 일흔두 살의 신입생이 처음 연필을 쥐었을 때도, 흰 종이가 이렇게 넓어 보였을 것이다.
첫 줄에는 할머니의 첫 문장을 옮겨 적었다.
"꽃이 지는 것을 서러워 말 것."
그 아래에 나의 첫 문장을 적었다. 잘 쓰려고 애쓰지 않았다. 글이라는 것은 잘 쓴 것보다 남긴 것이 이기는 법이라고, 나보다 육십 년을 더 산 사람이 가르쳐 주었으므로.
언젠가 누군가 이 공책을 옮겨 적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누구든, 그는 알게 될 것이다. 눈은 문장을 스쳐 지나가지만 손은 문장 안에 잠시 들어가 산다는 것을. 옮겨 적는 동안 우리는, 잠시 같은 문장 안에서 산다는 것을.
오늘은 아무것도 적을 것이 없다. 그래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