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세 시간 반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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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세 시간 반 전문
기차는 세 시간 반을 달렸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한결이에게 뭐라고 첫마디를 꺼낼지 연습했다. 야, 오랜만. 너무 아무렇지 않은가. 미안해. 너무 무거운가. 편지 잘 받았다. 이게 제일 나은가. 옆자리 아주머니가 힐끔거릴 만큼 입을 달싹거리다가, 연습은 곧 그만두었다.
대신 창밖으로 지나가는 논과 산과 낮은 지붕들을 보면서, 팔 년 치의 기억이 아무 순서 없이 지나가게 두었다.
초등학교 2학년, 전학 온 첫날 짝이 된 한결이가 지우개를 반으로 잘라 주던 것. 자기 것보다 큰 쪽을 내게 주고는 평생 생색내던 것. 우유 급식에서 나는 흰 우유, 걔는 딸기우유가 나오면 서로 바꿔 먹던 것. 5학년 때 자전거를 배우다가 둘이 같이 화단에 처박혀서, 무릎에 나란히 같은 모양 흉터가 남은 것. 중2 때 내가 시험을 망치고 울자, 한결이가 아무 말 없이 문방구에서 제일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 온 것. 위로랍시고 한 말이 "이거 팔백 원짜리야"가 전부였던 것.
그 애는 위로를 말로 하는 법이 없었다. 늘 물건으로, 행동으로, 옆에 있는 것으로 했다.
그러니까 열한 시 오십팔 분의 그 문자도, 하루 종일 미루다 겨우 보낸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려 하다가 겨우 보낸 것이었을 테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오십팔 분까지 쥐고 있었을 것이다. 유리컵을 깨고 삼 일을 숨던 애니까. 나는 그걸 일 년이 지나서야,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야 알아차렸다.
미안함도 서운함도, 너무 오래 쥐고 있으면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헷갈리게 된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지금 이 기차가 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
안내 방송이 도착역을 알렸다. 창밖 멀리, 처음 보는 바다가 반짝이고 있었다. 한결이가 매일 보던 바다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일 년 만에, 한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