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간판을 내리는 날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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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간판을 내리는 날 전문
간판은 오전에 내려왔다.
여섯 빛깔이 된 무지개가 크레인에 매달려 내려오는 걸, 동네 사람들이 골목에 서서 지켜봤다. 302호 할머니는 손을 흔들었다. 사람한테가 아니라 간판한테였다. 아무도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빈 가게 안에서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다리미판을 닦았다. 가져가 봤자 놓을 데도 없는 업소용 다리미판을, 아버지는 버리는 날까지 닦았다. 나는 그 등을 보다가, 준비해 온 것을 내밀었다.
공책 한 권이었다.
"이게 뭐냐."
"장부. 새 장부."
첫 페이지에는 내가 어젯밤에 적은 목록이 있었다. 무지개세탁소가 삼십 년 동안 이 골목에서 받은 것. 통닭, 김장 김치, 돌떡, 새벽 인사, 단골들의 삼십 년. 그리고 무지개세탁소가 남긴 것. 주인 찾은 종이 마흔여섯 장, 도서관에 기증된 상자 하나, 그리고 남의 하루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 하나.
"마지막 줄은 뭐냐, 그럼."
"나. 내가 남은 거잖아."
아버지는 공책을 받아 들고 오래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딱 한마디 했다.
"글씨는 여전히 못 쓰는구나."
우리는 셔터를 내리고 골목을 걸어 나왔다. 나는 다음 주부터 나갈 곳이 생겼다. 대단한 곳은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저녁마다 셀 것이 있는 일인지부터 확인했다. 오늘 하루가 어디로 안 가고 남아 있는지, 세어 볼 수 있는 일인지.
일곱 살의 그림은 지금 내 책상 앞에 붙어 있다. 맞춤법이 틀린 그 문장 밑에, 나는 서른다섯의 글씨로 한 줄을 보태 두었다.
누구의 주머니에나, 차마 버리지 못한 하루가 들어 있다.
세상의 모든 주머니를 뒤지던 사람의 딸은, 그걸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