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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폐기하지 않는 것들

한글타자왕 오리지널 · 한글타자왕 오리지널 · 여백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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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폐기하지 않는 것들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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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폐기하지 않는 것들 전문

금요일에 폐기 업체 트럭이 왔다. 육백스물네 권이 상자째 실려 나갔다. 나는 트럭이 떠나는 걸 도서관 창문에서 지켜봤다.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그냥 섭섭했다. 하지만 스물여덟 권은 트럭에 실리지 않았다. ㅎ의 메모가 있는 여섯 권, 그리고 내가 여백에서 다른 낙서를 찾아낸 스물두 권. 하트와 이니셜, 누군가의 결심, 시험 전날의 낙서, "이 책 재밌음. 믿고 읽으셈"이라는 추천사까지. 강 선생님은 그 책들을 폐기 목록에서 빼면서 사유란에 이렇게 적었다. '사료적 가치 있음.' "낙서가 사료예요?" "기록이잖아. 이 학교를 다닌 애들이 뭘 읽고 뭘 생각했는지, 이만한 기록이 없다." 우리는 리모델링 후 도서관 한쪽에 그 책들을 위한 작은 서가를 만들기로 했다. 서가 이름은 내가 지었다. '여백 서가'. 대출은 안 되고 열람만 되는, 낙서가 있어서 살아남은 책들의 자리.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문구점에 들러 연필 한 자루를 샀다. 샤프가 아니라 연필이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책상에 앉아 진로 희망서를 다시 폈다. 여전히 세 칸을 채울 자신은 없었다. 대신 나는 이면지에 다른 질문을 적고, 그 아래 답을 적어 보았다. '어떤 하루를 보내면 저녁에 덜 억울한가.' 읽은 것. 옮겨 적은 것. 찾아낸 것. 정리한 것. 누군가의 문장을 스물일곱 해 뒤에 받아 낸 것. 세 칸짜리 빈칸보다, 이 목록이 훨씬 나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