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하루의 모양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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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하루의 모양 전문
우리는 서고 바닥에 폐기 상자를 뒤집어 놓고 마주 앉았다.
선생님은 내 노트를 한 장씩 넘겼다. 자신의 열여덟이 남의 손글씨로 정리되어 있는 걸 읽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벚꽃 메모에서 피식 웃었고, 아버지 메모에서 오래 멈췄고, 12월 메모는 읽지 않고 덮었다.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뭐가 되셨어요?"
내가 물었다. 무례한 질문인 걸 알면서 물었다. 이십칠 년 전의 ㅎ에게 묻고 싶은 걸, 눈앞의 어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보다시피. 사서."
"그게... 찾으신 거예요? 좋아하는 거."
선생님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고 창으로 들어온 저녁 빛이 책장 등을 훑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주랴. 나는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맥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이십칠 년을 더 살아도 모른다니.
"대신 다른 걸 알게 됐다. 어떤 하루를 보내면 저녁에 덜 억울한지. 나는 책 사이에서 뭔가를 읽고, 정리하고, 애들한테 책을 찾아 주는 날이 그랬다. 그래서 그런 날이 많은 직업을 골랐다. 그게 다야."
"꿈이 아니라요?"
"꿈이라는 말은 너무 크더라. 직업은 꿈의 이름이 아니라 하루의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정리했다. 뭐가 되고 싶은지 말고,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지부터 물었으면 나는 덜 헤맸을 거다."
선생님은 내 노트를 돌려주며 덧붙였다.
"근데 너, 이거 옮겨 적는 거. 누가 시켰냐?"
"...아니요."
"성적에 도움이 되냐?"
"아니요."
"하지 말라면 안 할 거냐?"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선생님도 웃었다. 12월의 메모가 우리 둘 사이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