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공책 속의 계절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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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공책 속의 계절 전문
여섯 권을 순서대로 옮기다 보니, 공책에는 날짜가 없는데도 시간이 읽혔다.
"못자리에 물 대는 소리가 좋다"라는 문장 곁에는 봄이 있었고, "마늘 세 접을 엮었다"라는 문장 곁에는 가을이 있었다. "수돗가가 얼었다" 다음 장에서는 겨울이 왔고, 몇 장 뒤 "매화가 혼자 폈다"에서 다시 봄이 왔다. 나는 어느 밤부터 공책을 옮기며 계절을 세기 시작했다. 여섯 권의 공책에는 대략 열다섯 번의 봄이 들어 있었다.
처음 한두 권은 거의 전부가 옮겨 적은 남의 문장이었다. 그런데 권수가 늘수록, 문장들 사이에 할머니 자신의 문장이 늘어 갔다. 남의 글을 베끼며 글자를 익힌 손이, 어느새 제 마음을 적기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의 문장은 짧고 정직했다.
"오늘은 경로당에서 화투를 쳤다. 내가 다 잃어 주었다. 그래야 또 부른다."
"미장원에 갔다. 팔천 원. 거울을 오래 봤다."
"비가 오면 무릎이 먼저 안다. 무릎이 일기예보다."
나는 자판을 치다가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웃었다. 밤 한 시의 방에서 혼자 웃고 나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되었지만, 그 웃음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옮겨 적은 문장과 할머니의 문장은 나란히 놓여 있어도 구별이 됐다. 남의 문장은 반듯하게 베끼려 애쓴 글씨였고, 할머니의 문장은 말하듯이 흘러가는 글씨였다. 나는 어느 쪽도 빠뜨리지 않고 옮겼지만, 파일에는 할머니의 문장만 따로 굵게 표시해 두었다.
그 굵은 문장들만 이어 읽으면, 그것은 그대로 한 사람의 일기가 되었다. 열다섯 번의 봄과, 열다섯 번의 김장과, 수백 번의 경로당 화투와, 무릎이 미리 알던 수많은 비.
일흔둘에 글을 배운 사람이 세상에 남긴 기록이, 내 화면 위에서 한 줄씩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