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999년의 열여덟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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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1999년의 열여덟 전문
집에 와서 나는 ㅎ의 메모들을 날짜순으로 정리해 보았다.
1999년 3월부터 시작해서 12월까지. 메모 스물몇 개를 시간 순서로 늘어놓으니, 그것은 한 사람의 일 년이 되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열여덟 살의 일 년.
3월의 ㅎ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몰랐고, 4월의 ㅎ은 수학 시간에 벚꽃을 봤고, 5월의 ㅎ은 아버지와 냉전 중이었다. 6월의 메모는 짧았다. "모의고사. 말하고 싶지 않다." 7월의 ㅎ은 시집을 두 권 연달아 빌렸다. 8월에는 이런 메모가 있었다.
"방학 내내 도서관에 왔다. 집보다 시원하고, 학원보다 조용하고, 무엇보다 아무도 나한테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지 않는다. 책은 그런 걸 안 묻는다. 그냥 자기 얘기를 들려준다."
나는 그 메모를 옮겨 적다가 픽 웃었다. 책은 그런 걸 안 묻는다. 맞는 말이었다. 열여덟에게 세상이 하는 질문은 사실상 하나뿐이고, 다들 그 하나를 못 견뎌 하는데, 정작 어른들은 그 질문이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9월의 ㅎ은 성적이 떨어졌고, 10월의 ㅎ은 "졸업하면 이 도서관이 제일 그리울 것 같다"라고 썼고, 11월의 메모에는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무섭다."
거기까지 옮겨 적고 나는 연필을 놓았다. 그 문장은 내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백지 진로 희망서의 세 빈칸 속에 들어 있던 진짜 문장. 쓸 게 없어서 못 쓴 게 아니라, 이 문장을 쓸 수 없어서 못 쓴 것이었다.
그런데 11월의 메모에는 뒷문장이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책을 한 권 다 읽었다. 그거면 된 하루라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