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12월의 메모를 찾아서 한글 타자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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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12월의 메모를 찾아서 전문
ㅎ의 1년에는 빈칸이 하나 있었다. 12월.
11월의 메모가 적힌 시집의 대출카드에는 그해 12월에 마지막으로 책이 나간 기록이 있었다. 그러니까 ㅎ은 12월에도 도서관에 왔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12월의 메모가 있을 것이다. 일 년의 마지막 메모, 어쩌면 그 두려움의 결말이 적힌 메모가.
문제는 시간이었다.
"다음 주 금요일에 폐기 업체가 온다."
강 선생님이 말했다. 서고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책장이 세 줄이나 남아 있었다. 어림잡아 육백 권. 나는 화요일과 목요일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요일에도 도서관에 갔다. 강 선생님은 왜 매일 오냐고 묻지 않고 열쇠를 내주었다.
책을 꺼낸다. 여백을 확인한다. 바코드를 찍는다. 목록에 적는다.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이상한 상태가 된다. 손은 기계처럼 움직이는데 머릿속은 조용해진다. 야자 시간에는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종류의 집중이었다.
수요일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다른 사람의 낙서를 찾았고(하트와 이니셜이었다), 목요일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금요일 저녁에 나는 책장 맨 아래 칸, 제일 구석에서 그 책을 찾았다.
『직업의 세계』. 1996년판. 낡다 못해 등이 갈라진 진로 안내서였다.
하필 이런 책이라니.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던 애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책이 직업 사전이었다는 게, 나는 웃기고 서글펐다. 속표지를 펼치자 익숙한 필체가 있었다. 삐딱한 히읗. 꾹 눌러 찍은 마침표.
"1999. 12."
메모는 길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읽기 시작했다.